정조 편지 뒤죽박죽, ㅋㅋ가 있다고? 다혈질이었다?

정조는 인간적이면서 유머러스한 군주이면 성품이 다혈질에 흥분을 잘했다는 것도 알고 계신가요?

조선시대 한글은 여자들이 많이 썼기에  암글이나 언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경전을 번역하고 싶어 했고 이황과 이이가 한글로 뜻풀이를 하고 번역을 함으로써 경전적인 지식은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또한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한글을 사용했으며 세자에게도 한글을 가르쳤다 합니다.

정조는 여자 친척들에게 보낸 편지에 한글을 사용했으며, 노론 벽파 지도자로 도승지와 영의정을 지낸 심환지에게 비밀리에 보낸 정조어찰첩 297건에 정조 편지 뒤죽박죽, ㅋㅋ가 있다고 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조 어찰첩 정조 편지

 

정조 어찰첩은 조선 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을 엮은 서첩으로, 1796.8.20~1800.6.16 일까지 6첩, 필사본 총297편으로 글자 수는 52,000여자로 공식적인 사료의 이면에 숨겨진 사건의 내막과 정조의 의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라고 합니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받은 편지를 모두 태우고 없애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심환지는 한 통도 없애지 않고 모두 보관해 후손들에게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정조 편지 뒤죽박죽

 

정조의 뒤죽박죽
정조의 뒤죽박죽 정조어찰첩 참조

 

정조는 심환지에게 끊임없이 서신을 왕래하면서 인사를 조율하고 불만을 표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정조는 편지에서 한문으로 굉장히 유료하게 갈겨 쓰시며 중간에 뒤죽박죽 (뒤쥭 박쥭)을 쓰신 이유가 뒤죽박죽에 해당하는 한문이 없어서가 아닌 열받아서 쓰신 거라는 거예요.

‘노론 정파 너희 요새 왜 이렇게 내부 사정이 엉망이냐?’ 이런 감정을 살려 넣은 단어인데, 놈들이 한 짓에 화가 나 밤에 이 편지를 쓰느라 거의 5경이 지났다 하며 내 성품도 별나다고 하는 내용으로 이것을 받은 신하 입장은 어땠을까요?  임금님이 많이 화가 나셨구나 이런 느낌이 오고 성인 남자가 감정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 한글을 사용한거라고 합니다.

 

수원화성
수원화성 국사편찬위원회 자료 참조

 

또한 18세기 유만주하는 학자도 일기를 쓰면서 한문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보송보송 혹은 머흘머흘( 구름이 험상궂게, 험악하게 움직이는 것)이런 의성어나 의태어를 한글로 표기했다는 문헌도 있을 정도로 남자들도 종종 사용했는데, 한글이 암글이라 불린 이유는 문자를 남자나 여자가 성별에 따라 대하는 태도나 사용하는 습관 이런 것들이 달랐기 때문이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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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가가(呵呵) 는 ㅋㅋ라고?

 

정조의 비밀어찰
정조의 비밀어찰

 

도목정사(인사행정)가 잘 되었다고 하니 무척 다행이다. 퇴근한 뒤로 잘 있었는가?
여론을 대략 들어보니 시패(근무시간을 가늠하기 위해 시각을 적은 목패)와 소론은 그다지 잘못되었다고 여기지 않고, 간혹 칭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무관들조차도 놀랍다고 하며 입을 모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너무나도 다행이다. 남인들은 초사(처음으로 벼슬 오르는것)를 얻지 못한 것을 자못 불만스러워 한다는데, 차후에 김성일의 자손을 거두어 써서 크나큰 비난을 막는 것이 어떠한가? 감역(전곡 출납의 실무를 맡거나 공물징수를 담당하는 하급관리)을 소론에게 주지 않으면 또 무슨 욕을 먹겠는가? 가가(呵呵)이만 줄인다.
<피봉> 洞門에 즉시 전할 것 / 정사년(1797) 12월 21일 저녁)

웃음소리로 하하, 껄껄을 한자를 빌려 가가로 표현한 것으로  현재는 ㅋㅋ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정조 다혈질 성품

 

정조는 편지의 구상이 진척되지 않으면 마구 거칠게 화를 내는데  국정 전반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시사(時事:정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마다 그저 마음 속에 불길을 치솟게 만들 뿐”이라고 내뱉었으며, 최측근인 서영보를 호로자식, 촉망받던 젊은 학자 김매순은 “젖비린내 나고 미처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한 놈”, 심환지에게도 “갈수록 입을 조심하지 않는다”“생각 없는 늙은이”,김의순에게 “사람 꼴을 갖추지 못하고 졸렬한”, 이노춘에게 “약하고 물러터진 X”이라고 욕을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반면 심환지 부인의 병환을 염려하며 삼뿌리를 보내고, 전복과 조청을 선물하는 등 속깊은 인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며 정약용에게는 책과 부채, 비단도포를 선물하는 등 엄청 아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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