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3명의 여왕!!! 누구? 신라시대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

반만년 역사 대한민국에는 왕위에 오른 단 3명의 여왕이 존재합니다.

그것도 신라시대에만 존재하는데, 세명의 여왕으로  27대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 51대 진성여왕이 있어요.

그렇다면 왜 신라시대에만 여왕이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 자세히 알아보고 3명의 여왕의 치정에 관해서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라시대 3명의 여왕

 

 

1. 선덕여왕

 

 

선덕여왕 영정
선덕여왕 영정 대구 부인사 숭모전 참조

 

선덕여왕은 신라의 27대 국왕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으로 아버지 진평왕은 자신의 삼촌을 대신해 왕위에 올라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여 자신의 아버지인 동륜태자의 가문을 높이고 자신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해 그 가문을 성골 가문으로 삼아 남성 중심 사회에서도 혈통을 중시했기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은 구휼정책을 활발히 추진하였으며 첨성대를 건립하여 농사에 도움을 주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으며 불교문화를 융성시켰습니다. 또한 당나라 문화를 수입해 찬란한 신라문화를 꽃피웠습니다.

 

 

2. 진덕여왕

 

진덕여왕은 마지막 남은 성골 혈통으로 선덕여왕 이후 왕위에 올랐으며 당나라와 긴밀한 외교관계를 구축했고 중국과 친밀한 한화정책을 폈으며 나당 연합을 체결, 신라시대 최고 행정관서로 왕정의 기밀사무를 관장하는 부서인 집사부 설치, 행정관부의 체계화로 중앙집권적 귀족관료체계를 완성하였습니다.

김유신으로 하여금 국방력을 증강시켜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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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성여왕

 

진성여왕은 신라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여왕으로 삼국시대 신라의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성골인 것에 반해 진성여왕은 통일신라시대 진골로 왕위를 이어받아 20대 젊은 나이에 즉위했으며 황룡사에 백고좌를 설치하여, 헌강왕과 정강왕의 정책을 계승해 불교를 통해 민심을 수습하고자 한 것으로 보여지며 대구화상과 함께 향가를 수집하여 삼대목을 편찬하였습니다.

삼대목은 신라시대의 상대, 중대, 하대로 분류된 향가로 현재는 내용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신라시대만 여왕이 존재한 이유

 

금관
금관 경주 박물관 자료 참조

 

신라시대만 여왕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성도 지위에 따라 토지와 재산을 가질수도 있고 상속도 가능하며 경제 사회 활동도 활발했고 사외적 지위도 높았지만 관직에 채용된 예가 드문 것을 볼 경우 골품제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요.

골품제란 타고난 신분 즉 신라 지배층 귀족을 등급으로 구분한 신분 제도로 성골,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의 다섯 등급이 있었으며, 성골인 진평왕에게는 딸만 셋이 있어 선덕여왕이 장녀로 왕이 승하하자 신하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 된거라고 합니다.

 

골품에 따라 관등의 상한선이 정해졌고 그 결과 관직도 제한되었으며 장관인 제5관등인 대아찬 이상은 진골만 올라갈 수 있었으므로 6두품은 아무리 뛰어나도 장관직에 임명될 수 없었습니다.

신라의 경우 계급에 따라 혼인이 이루어졌으며 골품이 낮은 배우자와 결혼하거나 죄를 지으면 골품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성골과 진골의 차이

 

성골과 진골의 차이는 진흥왕의 직계 및 방계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성골은 왕족 내부의 혼인으로 태어났으며, 진골은 왕족과 다른 귀족의 혼인으로 태어난 신분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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